2025-03-27
이혼 사유는 단순히 부부끼리의 갈등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한쪽 배우자의 행동이 상대방의 부모, 즉 직계존속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며 혼인관계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하죠. 민법 제840조는 이런 상황도 재판상 이혼 사유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먼저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입니다. 쉽게 말해, 내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배우자에게 폭행이나 모욕, 지속적인 무시나 학대를 당했다면, 그 사유만으로도 이혼 청구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단순한 말다툼이나 일시적인 갈등이 아니라, 해당 상황이 혼인을 지속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어야 하며, 법원도 이러한 정황을 엄격하게 판단합니다.
실제로 1986년 대법원 판례(86므14)는 시부모가 며느리로부터 반복적으로 모욕과 무시를 당했으며 이로 인해 혼인관계 자체가 흔들릴 정도로 갈등이 커졌다고 보고 이혼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단순히 부모와 사위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거나, 일시적인 언쟁이 있었다고 해서 무조건 이혼 사유가 된 것은 아닙니다. ‘심히 부당한 대우’라는 표현이 들어간 만큼,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모욕이나 정신적 폭력이 입증돼야 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혼 사유는 흔히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무겁고 복잡한 상황에서 등장하는 사안입니다. 바로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확인되지 않을 때입니다.
이 경우는 단순한 별거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연락이 두절된 정도가 아니라, 배우자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고, 누구도 그 생존 여부를 증명할 수 없는 상황이 3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 해당하죠. 이혼청구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법원은 혼인관계가 사실상 단절되었다고 판단하여 이혼을 허용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사유는 ‘실종선고’와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실종선고는 민법 제27조에 따른 절차로, 일정 기간 생사가 불명일 경우 법원이 실종자로 인정하고, 그에 따라 혼인이 해소됩니다. 하지만 실종선고에 따른 이혼은 만약 배우자가 살아 돌아올 경우 혼인이 자동으로 부활하게 되는 반면, 생사불명 사유에 따른 이혼 판결은 확정된 뒤에는 혼인이 부활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사라졌던 배우자가 어느 날 돌아오더라도, 한 번 내려진 이혼 판결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죠.
이처럼 이혼 사유는 단순히 배우자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가족 전체의 관계, 그리고 현실적인 생존 여부와 같은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모에 대한 모욕이나 학대 같은 문제는 감정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인 만큼, 갈등이 감정의 선을 넘어서는 순간 법적으로도 다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혼을 고려하는 상황은 언제나 복합적이고 예민한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단순한 감정이 아닌, 구체적 사유와 정황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