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7
부부 사이의 갈등이 한계를 넘어서면 결국 이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의 기준은 단순한 감정이나 오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민법 제840조 제6호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경우 이혼을 인정하는 조항으로, 최근 한 사례는 이 조항이 실제로 어떤 기준에서 적용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부부는 40대 중반으로, 남편(을)은 해외 사업을 이유로 필리핀과 태국을 자주 오갔고 긴 시간 해외에 머무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내(갑)는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성병에 감염되었고, 이는 남편으로부터 옮은 것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남편은 해외에 머무는 동안 생활비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결국 아내는 혼자서 자녀들을 키우며 경제적 책임까지 모두 떠안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 위자료, 재산분할 등을 청구하며 법정에 섰고, 그 근거로는 남편의 부정한 행위(제1호), 악의의 유기(제2호),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제6호)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재판에서 핵심이 된 쟁점은 남편의 외도 여부보다는 혼인관계가 실제로 회복될 수 없을 만큼 파탄되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법원은 혼인의 본질을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격적 결합이라고 정의하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고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만약 이러한 공동체로서의 혼인관계가 깨지고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설령 외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이혼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법원은 다음과 같은 점을 중시했습니다.
첫째, 아내가 성병에 감염된 이후 남편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그 의심이 혼인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
둘째, 남편이 해외 체류 이유나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아내는 남편을 신뢰하기 어려웠다는 점.
셋째, 남편이 생활비나 육아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가정의 모든 부담을 아내에게 떠넘긴 채 장기간 책임을 방기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남편의 행위가 법적으로 명확한 ‘악의의 유기’라고까지 보긴 어려워도, 부부간의 신뢰와 책임을 저버린 행위가 누적된 결과로 혼인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 것입니다. 결국 법원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고 아내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자주 발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갈등 구조를 보여줍니다. 외도나 폭력처럼 명확한 사유가 없더라도, 반복된 무책임, 소통의 단절, 생활비 미지급 등으로 인한 신뢰의 붕괴 역시 혼인 파탄의 원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 기준은 법조문 하나가 아니라 혼인의 실질적인 내용, 즉 함께 살아온 시간 동안의 신뢰와 역할 분담이 얼마나 지켜졌는가에 달려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사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