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7
이혼 소송에서 흔히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가 ‘유책배우자’입니다. 혼인파탄에 명백한 책임이 있는 쪽, 즉 외도나 폭행 등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를 뜻하는데요. 원칙적으로는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본인이 가정을 무너뜨려 놓고 그 사실을 근거로 이혼을 요구하는 건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부부가 오랜 시간 별거를 하거나, 이미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사라졌다면 유책 배우자라 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혼인과 가족은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제도인 만큼, 시간이 흐르며 유책배우자의 책임이 점점 희석되거나, 상대방 또한 혼인을 지속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내는 경우, 그리고 그 사이 자녀 보호와 경제적 배려가 충분히 이뤄졌다면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 별거하며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온 부부 사이에, 처음에는 외도라는 명확한 책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10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상 혼인관계가 종료되고 상대방도 더 이상 회복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 책임만으로 이혼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때 법원은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유책배우자의 잘못 정도, 상대 배우자의 태도, 별거 기간, 나이, 자녀의 유무와 그 상황, 생활비 지원 등 경제적 배려의 이행 여부, 그리고 이혼 이후 상대방의 생활 보장까지 전반적인 사정을 두루 살펴 최종 결론을 내립니다. 또한 부부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인격체가 공동생활을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성격적 결함이나 행동만으로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잘못에서 비롯된 갈등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지속적인 대화와 이해를 거부하고 공동생활을 사실상 포기한 채 세월이 흐른 경우라면 결국 그 책임은 부부 모두에게 일부씩 돌아간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혼인관계가 단순히 명목상 유지되고 있느냐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관계인지, 그리고 유책배우자가 그 이후에 어떤 태도를 보여왔는지, 또 상대방이 진정으로 혼인을 이어갈 의지가 있는지입니다. 단지 ‘누가 먼저 잘못했는가’를 따지는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습니다. 현재의 관계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탄 상태인지가 법적으로는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