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7
보통 이혼 소송이라고 하면 피해를 입은 쪽이 제기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외도나 폭언, 폭행 등 명백한 잘못을 한 배우자라면 오히려 이혼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고 보는 시선이 많죠. 실제로 우리 법도 '유책주의'라는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즉, 이혼의 원인을 제공한 쪽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법원은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는 사례를 늘리고 있습니다.
한 예로, 15년 전 외도를 하고 다른 여성과 살림을 차렸던 남편이 있었습니다. 이 남편은 한 차례 이혼 소송에서 패소했고 이후에도 상대 배우자인 아내는 이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녀들도 모두 성인이 되었고 부부는 15년 이상 별거하며 완전히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 기간 동안 생활비와 자녀의 결혼비용까지 책임졌고,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경제적 의무를 지속적으로 이행했습니다. 법원은 이 점을 고려해,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끝났다고 판단하고 결국 이혼을 허용했습니다.
이처럼 최근 판례를 보면 ‘혼인 실체가 장기간 사라졌고’, ‘상대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있었으며’, ‘이혼 청구가 축출 이혼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도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단순히 잘못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 뒤의 태도와 상황 변화, 그리고 혼인의 실질이 이미 종료됐는지 여부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유책 배우자에게도 재산분할이 가능한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재산분할은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부부 공동생활 속에서 형성된 재산에 대해 기여한 만큼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유책 배우자라도 혼인기간 중 재산 형성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면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재산분할 비율을 결정할 때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봅니다. 첫째, 각자의 명의로 된 재산 내역, 둘째, 그 재산 형성에 기여한 정도, 셋째는 혼인 지속 기간입니다. 이 가운데 최근 법원은 '혼인기간'을 특히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긴 세월을 함께 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 경제적·정서적으로 얽혀 있었다면 단순히 명의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거죠.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특유재산'입니다. 혼인 전에 가지고 있던 재산은 원칙적으로 나눠지지 않지만, 상대방이 그 재산의 유지나 가치 상승에 기여했다면 일부 분할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결혼 전에 보유하고 있던 건물을 아내가 관리해주고 수리하며 세입자 관리까지 맡았다면, 그 관리 기여도가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해야 할 점은 재산분할 청구에는 기한이 있다는 겁니다. 이혼이 확정된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청구하지 않으면 권리가 사라집니다. 감정 싸움에 몰두하다 보면 이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혼 후 재산문제를 생각하고 있다면 미루지 말고 조속히 상담과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